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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정보

드디어 되찾은 자유. 프랑코 사망 50주기와 카탈루냐.

by GATO VERDE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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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50주기: 카탈루냐와 기억해야 할 역사

1. 카탈루냐 최악의 암흑의 역사. 프란시스코 프랑코.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는 1939년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후,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약 36년 동안 독재 체제를 유지한 스페인의 군사 독재자입니다. 

 

그의 정권은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적 탄압, 언론·표현의 자유 억압 등이 특징입니다.
특히 다양한 언어·문화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다원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직책은 Caudillo - 까우디요였는데 한국말로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총통'으로 번역했는데 한국어로 총통으로 번역된 또 다른 사례는 히틀러입니다.

 

이 사람이 프란시스코 프랑코

 

지금도 스페인에서 누군가는 이 인물의 시기가 살기 좋았다며 좋게 평가하기도 하고 최악이었다며 치를 떨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상당히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입니다. 

 

당시 스페인 동전에 프랑코의 얼굴이 새겨져있다.

 

  • 프랑코 사망(1975년 11월) 직후, 왕정 복귀와 함께 Juan Carlos I가 새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1976년부터 새로운 시리즈 동전이 발행되었고, 프랑코 얼굴이 사라졌다. 
  • 즉, 프랑코 얼굴 동전은 공식 유통에서 점차 사라졌고, 대신 새 왕의 얼굴이 들어간 동전이 발행되면서 시대가 바뀌었음을 상징했다.

 

2. 프랑코 체제의 차별적 정책: 스페인의 다언어 지역을 향한 억압

프랑코 정권은 “하나의 스페인(Una, Grande y Libre)” 이념을 앞세워 카탈루냐, 바스크, 갈리시아 등 스페인 내의 모든 소수 언어·문화권을 강하게 탄압했습니다. 

 

주요 탄압 정책

  • 카탈루냐어·바스크어·갈리시아어 사용 금지
    공공장소, 학교, 정부기관, 심지어 거리 간판에서도 금지되었다. 나중엔 가정에서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 문화 단체·협회 강제 해산
    전통문화 활동, 지역 정체성 관련 단체는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됐다. 지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행사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기도 함.
  • 정치적 자치권 완전 박탈
    1932년 카탈루냐가 획득했던 자치권(Estatut de Autonomia)이 폐지되었다.
  • 지역 상징물 금지
    깃발, 노래, 상징물 등 지역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금지되었다.

 

3. 카탈루냐가 특히 크게 겪은 폭력·차별적 억압

카탈루냐는 프랑코 정권이 가장 경계한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억압도 더 강하게 적용되었다.

  • 카탈루냐어 사용 적발 시 체포·벌금
    학교에서 카탈루냐어로 대화한 학생들에게 체벌이 가해지고, 교사나 공무원은 처벌 또는 해직되기도 했다.
  • 지도자·지식인의 처형 및 망명 강요
    카탈루냐 자치정부 초대 수반인 **루이스 콤파니스(Lluís Companys)**는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프랑코에게 넘겨진 후 처형되었다. 유럽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처형된 유일한 사례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의 이름이 올림픽 스타디움 루이스 콤파니스이다. 카탈루냐어로 류이스 꿈빤스 정도로 발음한다.
  • 문화기관 파괴 또는 국영화
    카탈루냐어 출판사·신문은 강제 폐쇄되었고, 문화기관은 스페인 국영 체제로 편입되거나 사라졌다.
  •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정치적 탄압
    바르사는 카탈루냐 정체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억압의 대상이었다.
    • 구단장 조셉 수뇰(Josep Sunyol)은 프랑코 군에 의해 즉결 처형.
    • 경기장에서 카탈루냐어 사용 금지.
    • 축구팀의 이름도 FC BARCELONA에서 Club de Futbol Barcelona로 강제 개명을 당했었다.
    • 경기 중 '그라시아스' 대신 ‘메르시’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지금의 엠블럼과 당시의 엠블럼. 가운데 글씨가 다르다.

 

  • 스페인 내전(1936–1939) 직후 프랑코 정권은 전국적으로 약 15만~20만 명을 처형·실종시킨 것으로 연구됨.
  • 그중 카탈루냐 지역에서만 약 3,500~4,000명 이상이 처형된 기록이 존재한다.
    • 특히 **몬주익 성(Castell de Montjuïc)**은 대표적인 처형·구금 장소였음.
    • 바르셀로나 시민 중 상당수가 비밀 처형 또는 군사재판에 의한 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 모든 공식 지명은 스페인어로만 표기하도록 법령이 내려짐.
    • 바르셀로나의 거리 이름, 광장 이름, 행정구역 명칭이 모두 카탈루냐어 → 스페인어로 변경됨.
    • 프랑코 시기에 강제로 변경된 지명의 사례 (지금은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음) 
      • 1. Avinguda Diagonal → Avenida del Generalísimo Franco
        • 디아고날 도로는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길고, 가장 통행량이 많고, 가장 도로 폭이 넓은 도로이다. 그런 도로의 이름을 프랑코 정권의 최고 칭호인 “Generalísimo(총사령관)”을 붙여 대로 전체 이름을 바꿈.
      • 2. Gran Via de les Corts Catalanes → Avenida de José Antonio Primo de Rivera 
        • José Antonio는 파시스트 정당 ‘팔랑헤(Falange)’의 창립자.
        • Barcelona의 가장 가로로 긴 대로인 Gran Via 전체가 그의 이름을 달았음.
      • 3. Via Laietana → Avenida del 14 de Abril(제2공화국 선포일) → ‘프랑코식 명칭’으로 재정비 
        • 프랑코 집권 후 공화국을 상징하는 14 de Abril 명칭은 철저히 삭제되고,
          거리 입구 조형물·상징물·지명 표기 등이 모두 프랑코 체제에 맞게 바뀜.
      • 4. Plaça de Francesc Macià → Plaza de Calvo Sotelo
        • Francesc Macià는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언했던 인물.
        • 프랑코 정권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아 이름을 “Calvo Sotelo”라는 우익 정치인의 이름으로 변경.
      • 5. Avinguda del Paral·lel → Avenida del Marqués de Comillas
        • Paral·lel은 전통적으로 노동자·극장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정권이 싫어한 장소였음.
        • 그래서 바르셀로나 귀족 ‘코미야스 후작’을 기리는 이름으로 바꿈.
      • 6. Passeig de Lluís Companys → Paseo del Marqués de la Argentera
        • Lluís Companys(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는 프랑코에 의해 처형된 인물.
        • 따라서 그 이름을 사용하던 도로는 전부 삭제되고 귀족 출신 인물로 대체됨.
    • 카탈루냐식 성명도 공식 문서에서는 스페인어식으로 등록을 강제함.
      예: Josep → José, Francesc → Francisco, Jordi → Jorge
    • 현재 75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가정에서 카탈루냐식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불렀다 해도 공식 문서에는 스페인어식으로 등록된 사람도 많음.
    • 가정에서 몰래 가르치며 전수시키는 것이 유일한 생존방법이었음.

https://youtu.be/zZkMotTW_xw?si=vynPOfp7VQuWqN25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의 차이점을 간단히 소개한 영상을 첨부합니다. 

 

4. 억압 속에서도 카탈루냐가 지킨 정체성의 노력

그럼에도 카탈루냐 사람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냈다.

  • 비밀 학교(escuelas clandestinas)
    가정집이나 교회에서 몰래 아이들에게 카탈루냐어를 가르쳤다.
  • 은밀한 문화 모임
    문학회, 연극 모임, 전통 음악 모임이 비공식적으로 운영되었다.
  • 가정을 통한 언어 보전
    공공장소에서는 금지되었지만, 집 안에서는 카탈루냐어 사용을 통해 세대 간 언어 유지가 이루어졌다.
  • 축제·전통의 비공식적 유지
    사다리 인간탑(Castellers), 사르다나(Sardana) 춤 등이 축소된 형태로 이어졌다.
  • FC 바르셀로나의 ‘저항의 상징화’
    바르사는 운동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Més que un club”(단순한 클럽 이상)이라는 슬로건도 이 시기 정체성을 반영한다.

 

5. 프랑코 이후, 현재의 카탈루냐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 카탈루냐 자치권 회복(1979)
    Estatut이 부활하며 자치정부, 의회, 경찰(Mossos d'Esquadra) 등이 재구축되었다.
  • 카탈루냐어 공식언어 지위 회복
    공교육, 행정, 방송에서 자유롭게 사용되며 현재는 스페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부흥한 지역 언어 중 하나가 되었다.
  • 강력한 문화 부흥
    카탈루냐 영화, 문학, 건축, 음악 등에서 활발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 정치적 정체성 논의의 지속
    독립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는 오히려 카탈루냐 정체성의 강한 복원력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바르셀로나는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도시로 성장
    억압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의 바르셀로나는 자유·다양성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6. 글을 마무리하며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드리드를 비롯한 남부지방의 사람들은 카탈루냐가 겪은 수모와 치욕의 기억들을 알지 못하기에 카탈루냐사람들이 정체성과 언어를 지키기 위해 했던 처절한 몸부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모습을 폐쇄적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위해 수많은 피를 흘리며 애쓴 이곳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카탈루냐 사람이 카탈루냐로 길이 보전하기를 바란다.

 

 

이상으로 긴 글을 마칩니다. 

 

Muchas Gracias y Fins av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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